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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성 전력 114분
[첫 만남]
발자국을 따라
아아... 학교가기 싫다.
모든 학생들의 영원한 꿈, 학교가 없어지는 것. 모두들 매일이 아니어도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쯤은 뱉었을 대사일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 눈을 뜨자 어제 될대로 되라! 라고 정신줄 놓고 논 기억과 숙제를 안한 기억, 거기에 중요한 수행평가 마저 준비를 안했다는 걸 알아차리자 절로 얼굴이 구겨지고 몸이 무거워지고 일어나기 싫어졌다. 그리고 너무 많이 말해서 입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찰진 말투로 크게 외쳤다.
아-! 학교가기 싫다!
발자국을 따라
어떡해 되었냐고? 그 소리에 늦었는데 아침부터 뭔 헛소리야! 당장 안 일어나? 라는 엄마의 등짝 스메싱으로 이렇게 교복까지 쫙 갖춰입고 버스를 기다리는걸 보면 알 수 있지 않아? 말하면 좀 슬프니까 말은 안할께. 근데 버스가 안온다? 20분째 기다리는데 버스가 오질 않아. 주머니에 한쪽 손을 넣고 나머지 한 손으로 열심히 하던 핸드폰을 잠시 끄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상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야. 문이 열려야 하는 슈퍼 문이 닫혀 있고 길에는 나밖에 없고 아무도 없는거야. 지금 좀 아슬아슬해서 내 또래 얘들로 가득할 정류장과 거리가 텅 비었어. 이상하지? 이 시간까지 얘들이 모두 등교했을리는 없어. 일단 나부터 등교를 아직 안했잖아? 매일같이 금연구역 끄트머리에서 뻐끔뻐끔 담배를 피워대던 진상 아저씨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모두 등교를 할때까지 정류장에서 가만히 앉아 계시던 할머니도 보이질 않아.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시간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았지. 시간은 벌써 9시 10분전. 이젠 버스가 바로 와도 지각은 확정된 것이고 여전히 주위에는 나밖에 없어.
그리고 소리가 들려오는거야. 발자국 소리가. 저기 버스가 오는 방향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 터널에서 구두 소리가 또각또각 울리는 것처럼 들렸어. 여긴 터널처럼 소리가 울리는 공간이 아닌데 말이야. 가만히 쳐다보는데 사람은 없고 연두색 발자국이 계속 찍혀. 사람이 걷는 속도로 걷는 보폭으로 일정하게 찍히는거 있지. 처음에는 황당하다가 조금 무서워졌어. 난 꿈을 꾸는걸까? 이렇게 생생한데? 이게 꿈이라고? 꿈이면 악몽 같았거든. 나밖에 없는데 저쪽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와 다가오는 발자국. 공포영화의 'ㄱ'만 생각해도 싸늘해지고 밤잠을 설칠것 같은 기분에 잔뜩 쫄아버리는 나인데 말이야. 너무 생생하게 느껴져서 발자국이 내 앞으로 왔을땐 그냥 익숙하게 받아들었어. 익숙함이란, 정말 무서워. 그치?
점점 멀어지는 연두색 발자국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우습지? 공포니 무섭다니 꼼짝을 못하다가 익숙해지니 이젠 친근함을 느끼다니. 나도 왜 그랬는지 몰라. 아마 떠들썩하던 주위가 갑자기 고요해지고 나밖에 없다는 불안감에 유일하게 나타난 정체를 알순 없지만 그래도 반가운 발자국이어서인가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보기 싫은 친구가 있지만 어느 활동에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그 친구라면 그 친구가 좋아보이고 막 친해지고 싶을거야. 그래, 그런 느낌이야. 내가 공포영화에 나올법한 존재에 반가워하다니. 지금 심정 되게 복잡해. 하지만 발자국은 내 생각과 의사를 알아주지 않아. 남은 선택지는 내가 따라가는 것 뿐. 그래서? 따라갔지. 벌써 저만치 간 발자국을 쫓아 뛰어갔어.
근데 뛰어도 뛰어도 영 가까워지지 않는거야. 답답하고 오기가 생겨서 숨이 턱이 오르기까지 뛰었어. 거기, 서! 제,발! 날, 두고, 가지, 마! 발자국을 보고 뛰어서인가봐. 발자국의 걷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더니 이젠 걸어도 충분히 따라잡을 거리로 좁혀졌어. 숨을 고르면서 발자국을 따라가는데 이 길, 학교가는 길이야. 아, 센스없게. 왜 하필 학교 가는 방향인거야... 말한다 해도 발자국은 방향을 바꾸지 않지. 뭐, 당연한거야. 매일같이 보는 똑같은 풍경을 보고 싶지 않고 또 발자국이 걸음을 빨리 하던가 방향을 틀까봐 발자국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어. 어?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에 물이 떨어진 자국이 있는거야. 양쪽으로 왼발과 오른발 사이에 떨어진 물방울 자국이 궁금해. 무슨 의미지? 지금까지 본 발자국 사이에는 이런 자국이 없어서 더욱 궁금해져. 하지만 내가 생각해 봤자다. 진실은 발자국만 알겠지.
아, 너무 익숙한 풍경이길래 고개를 들었더니 학교 앞 정류장이 보여. 벌써 학교라니... 뭔가 아쉬었어. 이 시간이 끝나질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었거든. 근데 왜이렇게 조용하지? 이젠 내 목소리도 울리기 시작한거야. 게다가 오는 길에 단 한명의 사람도 볼 수 없었어. 당연히 우리학교 학생들도. 오늘이 휴일인가 생각을 해도 생각이 나질 않아. 아니겠지? 정류장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드디어 연두색 발자국이 멈추면서 나도 멈췄어. 일정하게 울리던 발자국의 구두소리와 내 운동화 소리의 하모니가 끝난거야. 조금 귀에서 하모니가 울리는 듯한 환청 후 공허한 침묵이 찾아왔어. 어색했지. 발자국은 내 말을 알아듣는것 같으면서도 대화할 법을 모르겠어서 말을 해야할 지 고민되었어. 나 혼자 떠드는건 취미가 아니거든. 결국 발자국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후두둑, 물이 떨어졌어. 양쪽 발자국 위로. 어,어? 저기, 우는거야?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당혹스러웠지. 잘 가다가 갑자기 왜... 아니 잘 못갔구나. 내가 따라왔을 때부터 발자국은 물방울을 뚝뚝 흘리면서 걸었으니까. 무슨 의미인줄 몰라 가만히 서 있었어. 그러다 갑자기 귓가를 흔드는 쨍한 소리에 깜짝 놀라 귀를 막았어. 마이크를 키고 떨어뜨리거나 바람이 그대로 불어오는 소리, 칠판 긁는 소리, 라디오 잡음이 섞여 귓가에서 커다란 음량으로 재생되었어. 듣기 싫은데 듣지 않을 방법을 몰라 어찌 할 수 없지. 눈가에 눈물이 맺히고 비틀거렸어. 정신이 없거든. 귀에 온 신경이 집중되면서 더욱 고통스럽고 싫었어. 비틀거리다 예민해진 감각에 힘을 다 써버려 결국 주저앉았어. 그럼에도 잦아들 생각을 안하고 더욱 심하게 울리는 소음이었어. 희미해지는 시야에서 난 봤어.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 까만 정장까지 입고 까마귀같은 사람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것을. 와, 학교가는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람이었어. 반가움과 궁금함, 그리고 도움을 원하기에 입을 열러 했어. 물어볼것도 있고 뭐 여러가지 말하고 싶은게 있었거든. 근데 입은 벌려지는데 말이 안나와. 바람이 빠지는 소리만 나와. 답답한데 귀는 찢어질듯 아프고 움직일 수 없고 유일하게 움직이는건 눈동자 뿐. 그 사람을 응시하는데 이젠 오열을 해. 나와 반대로 서 있지만 나와 같이 우는 사람. 그리고 정신을 잃기 직전, 나는 입모양으로 나에게 말하는 걸 봤어.
"꺄악!!!!"
"구급차! 119에 신고해주세요!!"
"누구야? 헐 우리학교 교복이야.."
"죽은거야? 어떡해..."
"무슨 일이, 히익! 왜 저래?"
"교통사고...? 버스가 갑자기 도로로 급커버하더니 얠 쳤어."
등교시간, 9시 등교 10분전, 한 고등학교 앞에서 버스의 핸들이 갑자기 고장나는 사고가 일어나 그대로 학생들이 등교하던 도로로 돌진, 학생 한명을 치었다. 버스 기사는 에어백 사이에서 정신을 잃은 상태로 구조되었지만, 치인 학생은 그대로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의식을 잃은 학생은 강대성. 이 학생 빼고는 버스 파편으로 긁힌 학생만 있을 뿐, 모두 멀쩡했다. 강대성 학생은 현재까지도 의식이 없으며 헨들의 고장 원인은 수사 중이나 아직까지는 발견된 사실은 없으며, 버스 회사에서는 전적으로 책임을 지며 강대성 학생의 회복을 적극 도와주기로 밝혔다.
저기요. 왜 그때 미안하다고 했어요? 나 가기 전에 그거 묻고 싶어요. 왜 울었어요? 저 알아요?
"미안해서."
뭐가요?
"말해도 몰라."
그건 말해봐야 알죠!
"아니, 넌 어차피 죽었고 기억 못해. 말 안할꺼야."
말투만 보면 못돼고 악독한데, 왜 울어요. 자꾸 우는 이유만이라도 알려줘요.
"너에겐 이게 나와의 첫 만남이지만, 나는 너와의 첫 만남을 지우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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