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뇽토리
[늑대와 양치기]
작은 마을이 있다 .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비춰지는 조용하고 풍요로운, 축복받은-
"악마!!"
"넌 저주받았어!!"
-저주받은 아이가 사는 작은 페릴컬 마을이다.
*작은 아이 번외
"늦게 들어오면 안된다-?"
"네에-!!"
흥, 메롱이다! 작은 아이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여성에게 속으로 혀를 쏙 내밀고는 집을 나섰다. 작은 체구에 찰랑이는 금발, 하얀 와이셔츠에 빨간 멜빵바지를 입은 아이는 여성에게서 등을 돌리자마자 환한 미소를 싹 지우고서는 곧바로 숲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작은 아이는 계속해서 숲속을 달렸다.
'이제는... 우리가 가 봤자...'
'더 이상은... 곧 돌아가실...'
작은 아이의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점점 돌덩어리를 지고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아이는 쉬지 않고 달렸다. 그래야지만 자신의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서는 더 이상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이 기분 나쁨을 떨쳐낼 것 같이 말이다.
"악!!!!"
아래를 주의깊게 신경쓰지 못하고, 결국 아이는 넘어져 버렸다. 작은 돌덩어리를 힘껏 노려보고는 이를 부득 간다. 겨우 이것 가지고, 겨우 넘어진 것 가지고 울어버리면 안된다. 아파서 사경을 해맬 할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울면 안되- 아이는 눈을 슥슥, 더러워진 소매로 대충 닦고는 한층 더 비장해진 얼굴로 일어났다. 할머니도, 내가 혼자서 왔다는 걸 알면, 분명 기특해 하면서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날 거야! 작은 아이는 또다시 숲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투둗ㄷ둑-
하나 둘, 빗방울이 잎사귀들을 톡톡 건들이더니 곧 아이와 땅에 후두둑 떨어졌다.
"비..."
작은 아이는 숨을 내쉬면서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눈을 감고 비를 온몸으로 맞았다.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해 달라는 작은 아이의 보챔에 언제나 '슬픈 늑대'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늑대의 소중한 꽃의 마지막 잎이 떨어지면서 더 이상 늑대는 아름다웠던 꽃을 볼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슬픈 늑대는 온몸을 던지면서 구슬프게 울었다고 했다. 비는 늑대의 슬픔을 가려주기 위해 사납게 비를 내려주었다고 마무리를 지은 이야기였다.
"늑대가 슬프게 우네..."
아이는 늑대의 소중한 꽃이 죽어버렸다는 기분에 덩달아 우울해 졌다. 늑대는 어디서 얼만큼 슬프게 울고 있을까? 옆에서 위로해 줄 친구는 있을까? 작은 아이는 눈을 살며시 뜨고 사납게 내리는 빗속에서 겨우내 작은 들꽃 하나를 찾았다. 연한 보랏빛의 아름다운 들꽃이었다. 작은 아이는 슬픈 늑대를 만난다면 꽃을 전해주리라 미음먹고 소중하게 품에 안았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된다. 늑대의 슬픔을 위로해 주고 싶지만 그래도 작은 아이에게는 할머니를 뵈러 가 한시라도 빨리 자리에서 훌훌 털게 하자는 목표가 있다. 눈을 최대한 가느다랗게 떠 비의 침입을 막고 아이는 있는 힘껏, 그렇지만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저 멀리 반짝이는 불빛인 할머니의 작은 오두막으로 달려갔다.
"하아, 하아, 할머,니!!"
저에요, 문 좀 열어주세요!!!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 문을 있는 힘껏 두드려 봐도 암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는다. 아무리 기운이 없으셔도, 깊이 주무시고 있으셔도 언제나 작은 아이가 문을 두드리고 소리 높여 할머니!!라고 외치면 들어오렴, 아가.라는 따뜻한 목소리가 아이를 따스하게 안아주고는 했다. 이상하네. 작은 아이는 직감적으로 할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고서야 작은 오두막이 아무런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할머니가 자주 타주던 홍차와 작은 아이와 즐겨 만들던 달콤한 마들렌의 냄새가 나질 않는다. 할머니? 떨리는 목소리와 팔을 있는 힘껏 숨기면서 작은 문고리를 돌렸다. 찰칵- 작은 아이는 무엇인가 제대로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할머니는 언제나 문을 잠그는 사람이었다. 부주의하게 문을 열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할머니.. 저 들어가요...?"
최악의 상황을 애써 제껴두고 비를 홀딱 맞느라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신경쓰지 않은 채 시선을 곧장 할머니가 누워있는 침대에 고장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사랑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왔었다. 집에 들어가면 따스한 공기와 푸근한 온도가 아이를 반기곤 했다. 자상하지만 유별난 어머니, 무뚝뚝하고 이성적인 아버지, 매일 치고박는 여동생까지. 모두들 아이를 사랑했다. 작은 오두막은 차갑고 쓸쓸했다. 정기적으로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어둡고 온기하나 없었다. 아니, 저 멀리서 온기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렇게 찾던 온기지만 아이는 한발자국도 띌 수 없었다. 첫째, 온기는 침대쪽에서 느껴왔다. 둘째, 온기는 낮설고 위험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다가가서는 안되. 작은 아이는 갈등했다. 위험한 온기지만, 지금 할머니를 보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이라는 생각은 아이의 머리속을 맘껏 헤집어 놓고 있다. 결국 할머니에 대한 걱정과 보고 싶다는 강한 마음은 직감적으로 울려대는 위험신호를 이겼다.
"할머니! 승현이에요. 많이... 아프신거에요?"
침대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아이는 침대 옆에 누군가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할머니는 많이 아프신걸로 알고 계시는데, 침대에 누워있지 않을리가 없다. 이웃 주민? 친척? 할아버지는 5년전에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누군가 아는 사람일것이 틀림없다. 그래, 그래야 한다.
우루루 콰광!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결국 천두번개까지 친다. 번쩍이는 불빛은 작은 오두막을 환하게 비춘다. 작은 오두막을 번개가 비춘것은 3초가량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명백히 자신의 할머니였고, 매우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을. 문제는 옆이었다. 침대옆에는 남성이 있었다. 짧은 흑발에 살짝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얇은 옷차림까지. 덩치가 아주 컸다. 왜소한 작은 아이와 할머니가 옆에 있다면 소인족 경험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작은 아이는 번개가 침과 동시에 코너를 돌아 침대 바로 아래에 가 있었다. 남성의 고개가 돌아가고 작은 아이는 그대로 쓰러져 기절했다.
"ㅏ.. 아, 승현, 승현아!!!!
깨어났어요! 맙소사, 아가. 괜찮니?"
머리는 돌을 올려놓은 것처럼 무겁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의 몸이 맞는지 의아했다. 눈도 제대로 떠지지 못하고 고개도 돌리지 못했다. 툭, 차가운 물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서서히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작은 아이는 차갑고 온기 없는 작은 오두막이 아닌, 따뜻하고 온기로 가득한 자신의 집에 있었다. 아이의 눈앞에는 눈물을 가득 달고는 툭 치면 바스라질 것 같은 어머니가 있었다. 푹신한 이불로 턱 밑부터 발끝까지 덮은 부드러운 이불을 살짝 치우고는 아이는 멍하니 일어났다. 실은 이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머리가 띵하고 어질어질했다.
"아가, 승현아. 일어나지 마렴. 아직 더 자야해!"
걱정스런 어머니의 말을 한귀로 흘려보내고 아이는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익숙함이 묻어나는 작은 아이의 방이었다. 배 위에는 일어나면서 떨어진 물수건이 축축하게 이불을 적시고 있었다. 마지막 기억에서 전혀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었다. 어머니의 외침에 헐레벌떡 아버지와 의사, 그리고 여동생이 차례로 들어왔다. 항상 봐왔던 아버지의 깔끔한 옷차림은 엉망이었다. 비에 홀딱 젖고 흙탕물에 군데군데 얼룩으로 드러워졌으며, 구김이 심했다. 여동생은 눈이 퉁퉁 부었고 빨갰다. 어머니또한 눈 주위가 빨갰고 머리는 손질이 전혀 되 있지 않았다. 깔끔한 옷차림이지만 단추가 모두 엇나가 있고 바지는 거꾸로 였다.
"아직 열이 높습니다. 좀 더 안정을 취해야 해요."
"선생님, 우리 승현이, 많이 심각한가요?"
"위험한 고비는 다 넘겼고, 이제는 푹 쉬고 약을 꼬박꼬박 잘 먹기만 한다면 금세 나을 것이에요. 걱정마세요, 미스."
"수고하셨습니다."
"미스와 미스터도 좀 쉬시고요. 아드님이 다 나으시면 다음으로 쓰러지실 것 같네요!"
그럼 약을 식탁에 올려놓고 저는 이만, 의사는 모자를 살짝 들었다 놓으면서 인사를 가볍게 하고 방문을 닫고 나갔다. 곧 부시럭 거리는 소리와 현관문이 열리면서 비가 쏟아지는 소리를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조용한 작은 아이의 방에 울렸다.
"승현아, 얼마나 걱정했는데!"
울먹이면서 작은 아이의 손을 꼭 쥐는 어머니의 손은 차가웠다. 항상 차가운 손이었던 어머니이기에 여동생과 한손씩 맡아서 따뜻하게 데우곤 했는데, 어머니의 손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자신을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에 아이의 손은 차가워지지 않았다.
"이승현,"
"...네."
"... 푹 쉬어라. 진, 그만 나와요."
"애드거-! 승현은-"
"진."
"...."
"승아, 너도 나오렴."
자신을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가득 잠긴 목을 억지로 움직여 대답했다. 칼칼하고 따끔거리는 느낌에 작은 아이는 본의 아니게 인상을 잔뜩 찌뿌렸다. 무엇인가를 말하려던 아버지는 아이의 인상에 멈추더니 어머니와 동생 모두를 데리고 빆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돌봄이 필요하다며 거부했으나 아버지의 눈짓 하나로 입을 꾹 다물고는 동생을 데리고 나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오랫동안 함께였고 파트너,라고 작은 아이는 줄곧 듣곤 했다. 무슨 일인지는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기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무언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아이는 알 수 있었다.
"콜록,"
아버지, 애드거 월렌은 영국의 유서깊은 백작가문 출신의 장남이었다. 백잭의 칭호만을 가지고 가문을 잇는것은 모두 남동생 페드릭 월렌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사업을 하러 이리저리 바쁘게 다녔다. 그러던 중, 미국의 라스베가스에서 어머니, 유 진을 만났다. 진은 촉망받는 한국인 사업가였다. 둘은 한 사교계 파티에서의 만남을 시작으로 친구겸 파트너에서 연인에서 결혼하기까지 6년. 그동안의 둘의 유대감과 믿음은 보통사람들과는 훨씬 더 컸다. 아무래도 사업에서의 손을 맞추었으니. 애드거는 진에게 고백을 할 때,
'나랑 결혼해줘.'
'나에게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데?'
'너가 좋아하는 작은 시골로 이사가서 완전 정착할꺼야. 런던도, 뉴욕도, 서울도 아닌 작은 시골마을 페릴컬로. 너도 알지? 잡지에서도 몇번 보았고, 그쪽에 수도 사업을 했었잖아.'
'...대성공이었지.'
'그래. 그리고 너에게 소개해 줄 일이 있어.'
'소개? 일?'
'응. 우리의 마지막 일.'
'뭐- 난 사업을 계속할 꺼야! 너가 뭔데 내 일을 끝내는거야?! 너가 사업을 접는다고 나도 접을 것이라는 착각은 마. 나는 내 일을 계속할꺼야. 설령 내 파트너가 너가 아니더라도.'
'응, 알아. 너가 이 일에 얼마나 애정을 갖는지, 얼마나 즐거하는지 나도 잘 알아. 끝까지 들어봐. 페릴컬 마을에 전기를 공급할꺼야. 물론 친환경 태양광 에너지로. 근데 너도 알다시피, 아직은 solar 에너지가 널리 퍼진게 아니잖아. 우리 둘의 마지막 사업은 이 에너지로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성공하면, 우리는 곧바로 페릴컬 마을로 가서 살꺼야. 아이도 낳고 오순도순.'
'너, 그렇게 구체적인 계획 짜두면 내가 거절 못할거라는 거 다 알고 있짆아.'
'응. 그래서 엄청 고민했어.'
'마지막 일은 받아들일꺼야. 그렇지만 너의 공식 프로포즈는 사업이 성공하면. 그때 받아줄께.'
이때가 연애 1년 차라고, 5년간 진행한 프로젝트는 대성공이었고 애드거와 진은 무사히 결혼을 하고 나와 승아를 나았다고, 작은 아이는 아버지에게 들었다. 작은 아이와 동생도 영국식 이름이 있다. 빅토리, 빅토리아 월렌. 아이는 점점 흐려지는 의식에 참지 못하고 침대위로 힘없이 쓰러졌다. 열이 다시 오르는 것을 느끼며 아이는 혼자있고 싶어하다는 자신을 눈치채 준 아버지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는 깊은 잠에 들었다.
툭. 차가운 물방울이 아이를 깨웠다. '방인데...?' 의아하며 작은 아이는 눈을 떴다. 온통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아이 혼자 덩그러니 누워 있다. 저 위의 끝없는 천장에서는 물이 한방울씩 떨어지며 아이를 가만히 두지를 않는다. 결국, 투덜대며 몸을 일으킨 아이는 한발자국을 움직여 떨어지는 물방울을 피했다.
"아!"
이럴수가, 분명 자신이 처음 누워 있던 곳에만 떨어지던 물방울이 새로 옮긴 자리에도 떨어진다. 아이는 이리저리 물방울을 피하지만 새하얀 벽은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망다니는것을 포기한 아이의 발 아래에는 지금도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들이 모인 물웅덩이, 아니 물바다가 만들어져 발을 감싸고 있었다. 문득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로 돌아가게 되었다. 손이 덜덜 떨리고, 머리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앞에는 무시무시한 남자 - 이제 아이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으아... 으, 어, 으!!!! 아아아아악!!!!! 으어! 흐, 흐허어어어어엉....…"
비명에서 결국 흐느낌으로 변한 아이의 울부짖음은 처절했다. 그날, 갑작스런 남자의 등장에 놀라 기절하지 않았다면 아이는 이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영원한 잠, 낯선 이, 밖의 날씨 등은 무방비한 아이의 정신을 잔뜩 흐려놓기에 아주 좋은 요소였다. 아이 앞의 남자는 그날과 같이 무표정이었다. 발작하듯이 우는 아이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아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흐어.... 허억...."
땀은 흘리지 않았다. 아이가 잠에서 한 것이라고는 울기만 했으니까. 눈이 뻑뻑해 눈을 비비려는데 눈물로 따끔거린다. 멍하니 턱 밑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눈물이 흐르게 놔두었다. 아이는 그저 가만히 있었다.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도 다시 잠들기에는 남자가 옆에 있었다. 한숨을 쉬고, 따뜻한 죽이라도 먹기 위해 몸을 일으킨 아이는 그대로 굳고 말았다.
아이의 발은 물에 푹 젖어 있었다.
-작은 아이 번외 끝